ART & TRAVEL / INTERVIEW
Aug 13, 2018

PARALLEL & PHASE

영화감독으로 치면 안토니오니와 브레송 사이 어딘가에 있다. 독일 화가 토마스 샤이비츠의 좌표다.

PARALLEL & PHASE

스스로에게조차 절대 미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샤이비츠의 표정은 오로지 몇 개의 단어에만 반응한다. 빛은 그를 미소 짓게 하는 어휘 중 하나다.

토마스 샤이비츠 Thomas Scheibitz의 그림 앞에선 폭풍우에 갇힌 항해사의 난감함과 비슷한 감정을 마주해야 한다. 그가 손에 쥔 지도는 이미 물에 젖어 있고 잉크는 번져 있다. 앞으로 나가야 하지만 어디가 앞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잉크가 번져 영토와 영토가 뒤섞인 지도의 표면은 기능을 상실한 기호와도 같다. 목적을 잃은 경계 사이로 무수한 의미들이 난입한다. 당혹함과 불안함 사이, 그에게 주어진 아주 제한된 범위의 알레고리를 근거로 항해사는 필사의 의지로 지도를 탐독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잔잔한 바다를 마주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국면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지도 모른다. 

PARALLEL & PHASE
WORKS IN PROGRESS AT THOMAS SCHEIBITZ STUDIO, BERLIN.

거대한 공장을 연상케 하는 스튜디오의 첫인상은 특별하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층고가 5m에 달하는 천장의 일부는 유리로 트여 있어 자연광을 건물 내부로 들인다. “인상주의자의 화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경직된 표정을 일부러 유지하고 있는 듯한 샤이비츠는 특정한 순간에만 미소를 짓는다. 빛은 아마 그를 무장해제하는 몇 안 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샤이비츠는 특히 빛과 관련해서는 대단히 예민한 감각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감각은 스튜디오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스튜디오 중간중간에는 작가가 직접 고안한 인공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샤이비츠는 이 조명이 색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사진가의 눈으로 그림을 보고 공장 노동자의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거대한 기둥 밑동엔 바퀴가 달려 있어 필요에 따라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고 기둥 상단부에는 거대한 원형 기둥 형태의 프레임이 위치한다. 이 프레임의 바깥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형광등 형태의 조명이 수직으로 설치되어 있다. 샤이비츠가 업무를 보는 작은 사무실 안에는 에드 루샤의 친필 편지가 걸려 있는데 에드 루샤도 이 조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거 어떻게 한 거지? 나중에 나에게도 알려줘.” 에드 루샤가 날렵하게 그려 넣은 드로잉이 눈길을 끈다.

샤이비츠의 스튜디오는 그림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이다. 그는 대개 25점에서 30점의 작품을 벽에 걸어놓고 작업한다. “각각의 작품은 아주 구체적인 계획에 의거해 제작됩니다. 계획이 완벽하지 않거나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그림은 애초에 시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계획이 완벽하다고 해서 후속 작업이 매끈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계획이 완성되면 일단 작품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모든 그림에는 적당한 크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각각의 작품에는 작가가 정해놓은 일종의 작업 지시서가 붙어 있다. 크기와 비례는 이 작업 지시서의 핵심이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완성된 캔버스의 표면에는 검은색 잉크로 일종의 아우트라인이 그려지고 그 아우트라인에 의거해 면들이 채워진다. 샤이비츠는 녹색을 좌표로 작업하는 듯하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작품은 공통적인 녹색, 형광 녹색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색의 순서를 정해서 작업하진 않습니다. 모든 작품은 각각의 진행 과정이 있고 그것은 모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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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IN PROGRESS AT THOMAS SCHEIBITZ STUDIO, BERLIN.

‘본능적 전개’는 샤이비츠의 작품 설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수사이다. “그림이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촉발되는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무력감에 감사할 때도 있습니다. 묘한 쾌감을 느끼는 거죠.”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티노 세갈과 함께 독일 국가관의 작가로 선정되었던 바 있던 토마스 샤이비츠의 평면은 낯설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선사한다. 큐비즘과 야수파, 팝아트와 하드 에지 페인팅의 특징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듯한 그의 평면은 일종의 번안 과정, 또는 번역 과정을 통해 회화의 표면으로 고착된다. 그가 번안하는 대상은 일종의 ‘이미지’이며 그것은 대부분의 성실한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가 일상에서 발견한 ‘안구를 찌르는’ 형상들과 연관되어 있다. “제 옆에는 늘 드로잉 북이 있습니다. 매 순간 무엇인가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을 포착하려 합니다. 드로잉을 하는 거죠.” 작가의 드로잉이 회화 작품 제작을 위한 아카이브의 첫 번째 카테고리라면 두 번째 카테고리는 일종의 스크랩이라 할 수 있다. “신문에서부터 잡지 광고, 전시 카탈로그, 소설책의 문구 등 다양한 것들을 스크랩합니다.” 아카이브의 마지막 카테고리는 사진이다. 작가의 스마트폰은 여기서 기록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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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스튜디오의 내부 모습. 사진 오른쪽의 대형 회화 작품은 완성된 것으로 캡션은 다음과 같다. BEWEGTER TAG, 2016 OIL, VINYL, PIGMENT MARKER ON CANVAS. 260 ×180CM 102 3/8 X 70 7/8 IN. COPYRIGHT THOMAS SCHEIBITZ / VG BILD-KUNST, BONN 2018 COURTESY SPR ÜTH MAGERS. WORKS IN PROGRESS AT THOMAS SCHEIBITZ STUDIO, BERLIN.

샤이비츠의 아카이브는 먼저 작가의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결정된다. “이 단계의 이미지는 오로지 저만이 볼 수 있고 저만이 독해할 수 있는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상 像입니다. 이를 가시화하는 과정이 바로 드로잉입니다. 드로잉을 통해 이 이미지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시각화되어 드러납니다.” 그의 작업 과정은 고도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 산업의 영역, 예를 들어 영화의 프로덕션을 연상시킨다. 시나리오 등을 정리하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은 제작 과정인 프로덕션과 구별되고 이 과정은 다시 후반 작업인 포스트-프로덕션과 구분될 것이다. 영화에서 후반 작업이 프로덕션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화가의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작품의 일부는 그대로 사라지거나 스튜디오에서 다시 최초의 단계로 돌아가 이 과정을 다시 수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어떤 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때론 10년 이상이 걸리는 작품도 있습니다. 만족할 수 없고 충족이 되지 않는 부분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요. 이런 작품이 마치 10분 만에 완성된 작품처럼 보였으면 합니다.” 샤이비츠의 평면에서 시간의 경과는 공간의 깊이로 전환되고 이 깊이는 모든 작품에서 균질화되는 과정을 거쳐 전시에 등장하게 된다. 영화감독으로 치면 그는 안토니오니와 브레송 사이 어딘가에 있다. 모든 것을 계획해 출발한 다음 나머지는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손은 종종 계획을 무력화시킨다. 순진한 관객들의 눈이 상의 표면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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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공장을 연상케 하는 샤이비츠 스튜디오의 전경. 작가가 직접 고안한 인공조명의 모습이 흥미롭다.

“위대한 회화의 변별점은 오로지 작가 개인의 독립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습니다. 회화의 제작 과정은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독립적이고도 개인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샤이비츠의 회화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러한 작가의 얘기를 좀 더 즉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없는 레이어로 중층되어 있는 샤이비츠의 표면은 해럴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가 말하는 ‘행위 Act’ 혹은 작가의 신체적 한계,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제스처 같은 것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선과 면은 고도로 편편 Flat하게 구축되어 있고 이는 신체적인 특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개념적이다. “물론 회화는 매우 개념적 Conceptual인 과정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 작품은 미술사에 상호참조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가.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찌르고 있나 하는 이미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미지의 문제인 거죠.” 샤이비츠의 회화가 일종의 개념화된 평면이라고 해도 그가 이것을 처리하는 방식은 매우 육체적이다. 그는 캔버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그림을 벽에 걸고 완성하는 방식까지 모든 과정을 오로지 혼자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제가 스스로 하는 것이 편합니다. 남에게는 도저히 맡길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그렇습니다. 혼자서 캔버스를 짜고 그림을 완성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술 창작을 직업 이상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작가 자신의 신체를 마치 공장 노동자의 그것처럼 개입시켜 군인처럼 작업하는 예는 특히 독일 출신의 작가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지점이다. 샤이비츠의 태도도 이러한 범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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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IN PROGRESS AT THOMAS SCHEIBITZ STUDIO, BERLIN.

샤이비츠의 작업은 지금까지 작가가 구축한 두 세계, 이 두 세계의 충돌과 화해를 통해 이해되어왔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추상이냐 구상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으로부터 그가 적시하는 조각의 입체와 회화의 평면을 어떻게 소구시켜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좀 더 생산적인 논쟁까지 다양하다. “회화는 깊이를 구현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색과 명암 등 다양한 요소를 동원해 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이지요. 반면 조각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회화와는 다르게 조각은 여러 공간을 이동하며 그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샤이비츠에게 회화는 공간을 창출하고 확장하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에게 조각이란 공간을 제한하고 축소해서 압착하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회화는 가능성의 영역이고 조각은 현실성의 영역이다. “회화의 모든 작업 과정이 오로지 저의 힘으로만 이뤄진다고 하면 조각의 제작 과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개입하고 무수한 협업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샤이비츠의 조각은 때론 그의 평면으로부터 탈주해나와 구현된 것처럼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제가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조각은 제 그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그림도 조각과는 무관한 별개의 존재입니다. 완전히 개별적이고 구별되는 두 개의 세계입니다.” 확장되는 세계와 응축된 사물 앞에서 관객은 다시 폭풍우에 갇힌 항해사의 심정이 된다. 주어진 아주 작은 단서들, 알레고리를 조합해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WRITER유병서

EDITOR정세영

PHOTOANDREAS MEICHSNER

2018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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