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DRINK
May 16, 2018

순수한 사케

작은 도쿠리 德利 안에 담긴 일본 문화의 정수.

순수한 사케

정미율이 뛰어난 아사히 주조의 프리미엄 사케 닷사이 미가키 소노사키에 DASSAI MIGAKI SONOSAKIE, 술잔 그림이 그려진 놀이용 주사위와 가면 모양 사케잔 모두 니혼슈코리아.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선다’. 메이지유신 당시 대두된 ‘탈아입구 脫亞入毆’ 사상은 일본의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의 관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통주 ‘사케 酒, Sake’마저도 유럽의 와인 못지않게 발전을 이루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와인의 포도 품종이 다양한 것처럼 일본 또한 사케를 위해서만 별도로 재배하는 쌀 품종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덕분에 ‘니혼슈 日本酒’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사케는 세계화에 성공한 식문화의 정수로 거듭났다.

순수한 사케
손으로 그린 수묵 패턴의 도자기 술병과 잔 모두 이선영, 노경선 작가의 작품 데카르트 DECART BY 해브빈서울.

사케는 쌀, 물, 효모, ‘국균 麴菌’이라는 누룩곰팡이를 주원료로 한다. 만드는 과정은 이러하다. 쌀의 껍질을 깎아 벗기는 ‘정미 精米’를 거쳐 발효 전 ‘세미 洗米’ 단계에서 잔여물을 깨끗이 씻는다. 다음으로 물에 담가놓는 작업을 ‘침지 浸漬’라고 하는데, 그 후 일정 시간 ‘증미 蒸米’해 쪄낸 쌀을 발효 및 압착한다. 이처럼 기본적인 생산 방식은 동일하지만, 쌀과 물의 종류 혹은 누가 어떠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빚느냐에 따라 사케의 맛과 완성도는 크게 달라진다.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긴 해도 현재 일본 내 사케 양조장은 1250곳 이상이며, 여기서 탄생하는 사케의 가짓수는 2만5000개를 훌쩍 넘는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정책을 마련해 ‘사케 소믈리에’에 해당하는 ‘기키자케시 利き酒師’를 활발히 양성 중이다. 기키자케시는 전 세계 미디어와 소비자들에게 체계화된 식문화로서 사케의 맛과 음용법을 알리고, 전통술에 투영된 민족정신을 전한다. 여러 번 깎아낸 쌀로 만든 사케일수록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는데, 이는 쌀에 함유된 전분이 쌀알 바깥 부분보다 안쪽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중 조미료나 양조 알코올을 쓰지 않고 오로지 쌀과 누룩으로만 빚은 것을 ‘준마이슈 純米酒’, 특수 효모를 사용해 정미율을 높인 뒤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킨 것을 ‘긴조 吟醸’ 라 부른다. 긴조보다 높은 등급으로 정미율을 50% 높여 만든 ‘다이긴조 大吟醸’와 별도의 열처리 과정 없이 효모를 살려 출하하는 ‘나마자케 生酒’도 있다. 특히 물을 첨가하지 않고 그대로 병에 담는 방식의 ‘겐슈 原酒’는 원액 특유의 진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캐스크 스트렝스 Cask Strength’ 위스키를 떠올리게 한다.

순수한 사케
저온에서 발효시킨 다이긴조 나마자케 구보타 스이쥬 KUBOTA SUIJU, 표면 옻칠 기법으로 더욱 관리가 편리한 유기 찻잔 겸 술잔 블루, 그린 컬러 모두 거창유기 GEOCHANGYUGI BY 해브빈서울.

조리 과정을 거쳐 완성된 요리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와인과 달리 사케는 식자재 본연의 맛이 중요하다. 메뉴 위 복잡하게 나열된 사케의 이름을 보면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여기에는 일련의 공식이 존재한다. 채소로 만든 요리에는 가열하지 않은 나마자케가 생선 요리는 담백하면서도 쌉싸래한 ‘단레이 가라쿠치 淡麗辛口’류의 사케가 제격이다. ‘구보타 스이쥬 久保田 翠寿’ 같은 나마자케 사케는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에게 우선적으로 권하는 술로, 여름에만 딱 한 번 출하하는 최상급 준마이 다이긴조다. 생주 生酒 특유의 신선한 맛이 예부터 꾸준히 발효 기법을 활용해온 우리 입맛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사케 ‘아쓰깡 あつかん’은 육류 안주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을 이룬다. 기름진 서양 요리를 맛볼 때, 늘 곁들여 마시던 와인 대신 맑은 사케를 시도해볼 것. 특히 ‘자쿠 미야비노토모 나카도리 作 雅乃智中取り’는 술을 짜내는 과정에서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나카도리 부분만을 모아 만든 술인데, 목넘김이 부드럽고 기존 준마이 다이긴조보다 한층 정갈한 풍미를 지녀 서양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뜻깊은 날을 더욱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다면 최고급 컬트 사케라 불리는 ‘주욘다이 十四代’의 ‘주욘다이 고쿠조 모로하쿠 준마이 다이긴조 나마즈메 十四代 極上諸白 純米大吟醸 生詰’를 추천한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Bourgogne 와인처럼 쌀을 재배하는 논의 등급을 각기 다르게 하는 이 주조는, 철저한 관리 아래 해마다 극소량의 사케를 한정 생산하는 곳이다. 1615년 이후 처음 15대 손이 가업에 뛰어들어 비로소 ‘원조 주욘다이 사케’를 완성하게 되었는데, 현미와 백미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첫맛은 은은하지만 점차 강렬한 아로마 향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술은 곧 미식의 정점을 가리키는 요소다. 나아가 일본인의 주식인 쌀로 빚은 니혼슈를 마신다는 건, 그들의 민족정신을 만끽하는 행위다. 몇 가지 ‘사케 공식’만 활용하면 사케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순백색 미곡 米穀으로 만든 사케는 작은 병 속, 일본 그리고 동양이 오래도록 지향해온 고유의 미학 美學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순수한 사케
왼쪽부터 술의 가장 순수한 나카도리만을 모아 만든 프리미엄 사케 자쿠 미야비노토모 나카도리 ZAKU MIYABI-NO-TOMO NAKADORI. 알코올 도수가 낮아 가볍게 즐기기 좋은 스파클링 사케 송죽매 미오 SONGJUKMAE MIO. 구보타 특유의 은은한 향이 전해지는 긴조주 사케 구보타 센쥬 KUBOTA SENJYU.

EDITOR박소현

WRITERBENJAMIN U. G. HWANG

PHOTOCHUN EUN

2018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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