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READING A BOOK
Jan 12, 2018

가장 먼 여성의 언어

생과 죽음 앞의 소녀 그리고 여성들. 7년 만에 단편집 <뱀과 물>을 출간한 배수아에 닿기 위한 지침서.

가장 먼 여성의 언어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브라질로 이주한 유대계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는 그녀의 놀라운 직관과 문학적 사유를 ‘환상적인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했다.

오래전 읽은 배수아의 몇 작품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배수아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1995), <철수>(1998) … <올빼미의 없음>(2010)까지.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작가의 몽골 여행기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2015). 그 외엔 모두 번역서였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이 작가는 당시 내가 쓰고 싶던 글을 썼던 것 같다. 배수아를 읽는 독자들이 그렇듯 철학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곱씹게 만들고 결코 잡히지 않는 비밀스럽고 불온한 이미지에 매료됐던 게 아닐까? 시간이 꽤 흘러 신작 단편집 <뱀과 물>을 앞에 둔 지금 나는 배수아의 소설보다 그녀의 삶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우선 그녀의 소설보다 번역서를 더 많이 읽었고, 기성 문단에 속하고자 하지 않았던 그녀가 라는 문학잡지를 통해 인터뷰어, 번역가, 편집자의 역할로서 ‘세상 밖으로 출현’해 이런저런 문학 행사나 낭독회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부터는 ‘배수아 소비하기’의 즐거움을 누렸다.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배수아는 직접 준비한 식사와 요가를 하는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여행하고 번역하고 가끔 글을 쓴다. 직관적인 그녀의 글쓰기는 꼼꼼한 자료 조사나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좋아하는 고수와 민트를 듬뿍 넣은 풍성한 샐러드를 만들고 전날 밤에 끓여둔 렌틸콩 수프와 꿀을 넣은 크림을 바른 통밀빵을 먹거나 아이허브에서 구매한 쌀가루, 녹말, 수수, 타피오카 등을 주원료로 한 글루텐프리 팬케이크 가루로 팬케이크를 구워 버터와 꿀을 올려 먹는 아침. 버르토크의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하는 아침 요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일상에서 글쓰기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는 작가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의 유년기는 낙관적이지 않았다. <뱀과 물>에서는 배수아가 지나온 불안정한 1970년대 한국의 모습이 문득 겹쳐지는데, 아마도 작가의 기억과 체험이 화자를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꿈이나 망상처럼 현재의 화자와 전혀 다른 혼란, 책의 표지가 주는 이미지처럼 선과 악의 묘한 경계에 있는 것이다. 가난과 불행으로 비춰지는 상황과 사건들에서 그들은 자유와 해방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작가가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그녀의 소설은 ‘Autre(프랑스어로 타자라는 뜻)-biography’적 감상을 준다. 배수아의 소설을 읽으면 그녀의 저변을 이루는 것들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책을 펼치기가 주저된다면 이번 소설집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다양한 힌트들이 여기 있다.

가장 먼 여성에 가 닿기 위하여

가장 먼 여성의 언어
배수아 작가의 소설집 <뱀과 물>(문학동네) 표지 이미지.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생각했던 이미지를 가장 잘 구현한 표지라고 했다.

“얼이의 뒷모습이 산등성이를 돌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나는 누워 있던 침목 위에서 일어섰다. 내 키는 침목을 훌쩍 넘을 정도로 자라 있었다. 얼이는 내가 사내아이로 변장한 채 살던 시절에 나를 알았다. 얼이는 마을의 미친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단지 내 얼굴, 내 웃음이 그의 어머니의 것과 같았기 때문에, 그는 영영 떠나기 전 나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 ‘얼이에 대하여’ 중
“여교사는 평생 동안 생명 있는 것들과 불화해왔다. 그중 최초는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가 조금이라도 친절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그녀를 강간만 하고 말았을 텐데.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여교사 자신이었다. 물론 그사이에는 수많은 다른 얼굴이 있을 터이나, 여교사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늙은 길라를 처음으로 만난 날 여교사는 이런 부탁을 했다.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자의식도 없이. 내가 왜? 늙은 길라가 비웃었다. 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지? 나는 너를 몰라. 만난 적도 없어.” – ‘뱀과 물’ 중
배수아는 여성을 이야기한다. 이번 소설집 <뱀과 물>의 단편들에서는 특히 여성이 되기 전 소녀들의 감정이 축을 이룬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단두대 위에 오르는 여성이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다뤄왔다. 물론 그 글들이 논쟁을 의식한 작업, 어떤 이즘 ism에 갇힌 운동적 형태는 아니다. 한 개인(여성)이 나아가고 성장하는 주체적 탐험의 과정이자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반발과 굶주림의 형상. 부모를 잃고 성별을 혼동하고 어린 시절을 부정하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소설적 상황을 배제한 채 들여다보면 그 조용한 경악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3월 배수아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미국 서점 북리엇 Bookriot의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은 그녀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음 인용은 영문 기고를 작가가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가장 먼 여성의 언어
일생을 고독 속에 살았던 로베르트 발저는 산책에 강박적으로 몰두했다. 산책은 자신의 내면을 거니는 행위였고, 그는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 중 눈밭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여성을 생각할 때면 나는 ‘유예된 자유’, ‘비밀스러운 경이’, ‘자아에의 굶주림’, ‘그녀 자신의 언어’ 및 ‘강렬한 내면의 육체’라는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내가 여성 주인공을 쓸 때 가장 의식하는 특징은 ‘강렬한 내면의 육체’다."

글쓰기와 여성으로 존재하기는 둘 다 매혹적인 도전이며 모험이다. 그것들은 때로 삶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더욱 사랑한다. 여성을 생각할 때면 나는 ‘유예된 자유’, ‘비밀스러운 경이’, ‘자아에의 굶주림’, ‘그녀 자신의 언어’및 ‘강렬한 내면의 육체’라는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내가 여성 주인공을 쓸 때 가장 의식하는 특징은 ‘강렬한 내면의 육체’다. 그 육체성이 그녀의 정신-언어를 자극시키는 방식을 좋아한다. 강렬한 내면의 육체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를 움직이게 하고 그녀를 부수고, 그녀를 떨게 하며, 그녀를 죽인다. 스스로 꿈의 고통에 시달리도록 그녀를 선동한다: 때때로 그녀를 낡은 세상에서 데리고 나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중략) 소설가로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떠나는 여성’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여행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쓸 때가 많다.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 때 또 하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 나는 주로 전통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성을 택한다. 작가로서 나는 그런 여인에게 끌리고 매혹된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신분을 보장받지 못했거나, 그것을 스스로 거부했다. 그녀는 부모나 형제자매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녀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스럽다고 간주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가난하고 외롭다. 그녀는 자기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가며,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녀는 반사회적으로 보인다. 동시에 특이하고 독립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삶에 대해서 그러한 삶이 마주치는 일에 대해서 그러한 삶이 꾸는 꿈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글을 통해서 나는 그녀에게 미학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싶다. 나는 그녀가 내가 넘어서지 못했던 경계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녀가 나보다 강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그녀가 물 위를 떠돌며, 마침내 가장 먼 바다에 가 닿을 수 있도록.”
글처럼 배수아는 <뱀과 물>에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소녀들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사건을 설정한다. 그녀와 가장 먼 단어는 전통, 관습과 같은 것들. 어떤 계보로 이어지고 규제와 틀에 따라 규정되고 연대하는 관계에 대해 작가는 가족을 잃거나 그 개념이 희박한, 구성원 속에서의 여성을 분리하는 작업으로 저항한다. “바다는 길고 단조로운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서서히 그 노래에 홀려갔다. 우리는 넋을 잃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노래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배고픔도, 갈증도, 더위도 잊었다. 바다는 모든 것의 경계 너머에 있는 먼 세상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파도의 흰 거품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처형했다.” – 배수아, ‘도둑자매’ 중

페소아, 제발트, 발저 그리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가장 먼 여성의 언어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는 삶과 죽음, 내면에 관해 고뇌하는 그의 에세이집 <불안의 서>를 번역했다.

“내 생각에 언어를 정복한다는 건 불필요하다. 사람은 언어와 모종의 관계를 맺거나, 혹은 맺지 못하는 것뿐이다.” “모국어는 사람을 만든다. 반면에 사람은 외국어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배수아는 (2017 1/2월호) 다카타 요코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단편 ‘귀의 목격자’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던졌고, 돌아온 요코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중시하는 것은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외국어의 한 문장, 표현, 혹은 어떤 텍스트가 내 생각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내게는 더욱 중요하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그 언어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반면에 산처럼 많은 지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지을 수 없다.” 둘에게 외국어, 언어란 이런 의미다. 배수아는 독일어와 모종의 관계를 맺었고 그녀에게 번역은 또 다른 집이 되었다. “살갗 표면을 하얗게 긁는 투명한 발톱처럼 크리피하면서 아찔하게 감각적”인 동시에 “가장 먼 바다의 안개처럼 지루하고 지루한 기나긴 독백의 글”을 쓰게 하는 촉매제. 페르난두 페소아, W. G. 제발트, 로베르트 발저, 그리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그중 아마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읽고, 탐하고, 번역하며 교감해온 작가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배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환상적인 불협화음’을 내는 여성 작가로 꼽은 인물. 카프카 이후 가장 위대한 유대계 작가, 브라질 국민 작가 등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그의 책에는 배수아의 소녀들과 영혼을 나누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녀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 비밀의 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샹들리에> 중. 이들은 “누구도 원치 않는 무해한 처녀”**들이다. 로베르트 발저의 단편 ‘원숭이’에서 이들은 보다 역동적이고 풍자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신랑으로 맞기에 당신은 적절하지 않지만, 그래도 예절 바르게 행동한다면 매일매일 코끝을 튕겨드리겠어요. 표정이 환해지시네요! 그래도 된다고 허락해드리죠. 대신 내가 지루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주셔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너무도 위엄 있게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원숭이는 찢어지는 소리로 웃어댔고, 그녀는 원숭이의 따귀를 쳤다.” – 로베르트 발저, ‘원숭이’ 중, (2016 3/4월호), 배수아 번역
한편 <불안의 서>에서 여성은 페소아의 고백을 통해 불완전한 어머니의 영역으로 부활한다.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못해 냉담한 감성을 갖게 된 화자는 <뱀과 물> 수록작 ‘얼이에 대하여’에서 ‘미친 여자’로 통하는 얼이 어머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와 ‘도둑자매’에서 어머니의 죽음과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조차 담담히 애도하는 소녀와는 상반된 양상을 띤다. 이 작가들의 미로처럼 오묘한 서사 속에서 여성 화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과 속박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순리처럼 이뤄지며 설사 죽음 혹은 벼랑 끝의 불행 속에서도 해방감을 느끼는 인물로 그려진다. 제발트가 <이민자들> <공중전과 문학> <아우터리츠> 등에서 그들의 상흔을 생생히 표현했다면, 이 몰아 상태의 난민들은 연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다 갔지만 인간 사회에서의 불화, 그 속에서의 여성을 예민하면서도 고통스럽게 감각한 작가들. 이들에게는 “삶에서 어린 시절만 빼고 모두 버리려는 단호함에는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콜레라, 전쟁, 핵폭탄, 방사, 광인과 소녀들의 살해 앞에 두려움에 빠지거나 길들여지지 않고, 차라리 더 적극적으로 가난과 광기와 죽음 쪽으로 끝까지 걸어가버리려는 완고한 의지가 있다.”***
그 공통된 감각이 은밀하게 겹쳐지는 아득한 순간이 오면 우리는 시의 언어를, 그리고 배수아가 품은 소녀들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해도 해명도 없이 느낌으로서의 공동체처럼. 그때 우리는 배수아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아니다. “우리가 ‘원주율을 안다’라고 말할 때 원주율이 가진 성질, 규칙 등을 아는 것이지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무한히 많은 모든 자리를 아는 것을 뜻하지 않듯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너에 관한 나의 이야기>에서 인용.
***<뱀과 물> 해설, 강윤정 ‘영원한 샤먼의 노래’ 중.
****과학잡지 <에피> 1호, 박부성 ‘상상하면 존재한다 - 가짜 구의 수학’에서 인용.

EDITOR이다영

2018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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