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 MEMO
Dec 07, 2017

소비자의 욕망

값,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하여.

구찌 크루즈 2018 캠페인. 구찌를 입은 로마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구찌 크루즈 2018 캠페인. 구찌를 입은 로마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얼마 전 이스탄불의 한 자라 매장에 진열된 제품의 가격표에 의문의 쪽지가 몰래 부착되어 있었다. 쪽지에는 ‘나는 당신이 사려는 이 옷을 만들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사연인즉슨,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가 터키 현지 의류 생산업체인 브라보 텍스틸 Bravo Tekstil과 계약하고 제품을 만들어왔는데, 어느 날 브라보 텍스틸의 사주가 돌연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직원들의 임금을 포함한 모든 계약금을 들고서.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인디텍스는 하드십 펀드 Hardship Fund라는 구호 기금을 만들어 수습해보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나 보상 체계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공장이 문을 닫은 지 1년, 노동자들은 여전히 보상받지 못했고, 인디텍스는 이들을 구제할 법적 책임이 없다.
우리가 가격표를 비교하며 무조건적 이득을 찾아 헤매는 동안, 브라보 텍스틸의 직원들은 그 가격표를 통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자신의 절박함을 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그들에게 가격표란 노동에 대한 형편없는 대가의 상징이자, 구제를 향한 마지막 희망인 셈이었다. 소비자들은 작은 종이에 새긴 몇 푼의 값어치에 이렇게 기구한 사연이 담겨 있을 줄 미처 몰랐을 거다. 싼 게 비지떡이라 했던가.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싼 값에 비지떡보다 훨씬 맛있는 걸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누리는 수많은 혜택 뒤에는 종종 누군가의 횡포와 누군가의 눈물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제값 주고 산다는 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볼 때가 왔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 부르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 가격표에는 이런 사회의 부조리를 피하는 데 들인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수백만 유로를 들여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다시 1급수로 자체 정화 처리한다거나, 협력 생산업체의 여름휴가를 보장하기 위해 몇 시즌이고 미리 컬렉션을 준비하고, 중개상 없이 직접 제3세계 장인들과 협업하며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등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품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관련된 모든 인력과 환경, 동물의 복지를 고려한다면 가격표의 금액은 기본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에는 당장의 이익보다 수년간 구축해온 이미지, 고집스러운 세계관, 앞으로도 지켜야 할 이름과 자존심 같은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름값 하네’라는 비아냥도 결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름값이야말로 럭셔리 브랜드들로 하여금 쉬운 길을 알면서도 복잡한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본디 인간은 이름을 걸었을 때 가장 도덕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개중에는 높은 이득을 우선시하는 브랜드와 기업도 분명히 존재한다. 터놓고 말하자면 정가의 신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보다는 몇 개월 후 할인 기간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많은 터라 기본 소매가격에 미리 거품을 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갖가지 상업적 장치와 현혹의 기술로 무장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린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윤 추구는 비즈니스의 당연한 이치이고, 기업의 폭리는 소비자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법. 우리에겐 언제나 구매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럭셔리는 결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무조건 비싼 가격표를 다는 게 관건이 아니다. 특별한 호사를 제값 주고 취하는 것, 그게 곧 럭셔리요, 명품이다. 내가 쓰는 돈의 가치를 정하는 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라는 걸 기억하자.
럭셔리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드문 호사’이자 ‘사치’다. 즉, 자주 누릴 수 없는 혜택이라는 것. 어차피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살면서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일종의 호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뭐든지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세상을 사는 지금의 세대는 특히 더 그렇다. 우리가 욕망을 키우고, 럭셔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거래할수록 가격표에 새겨진 액수에 부당 이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진다. 나의 사소한 소비 습관이 사회적으로, 또 범세계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조금 생각해보자는 거다.
사실 이렇게 길고 정성스럽게 럭셔리의 가치를 되짚어본 건, 죄책감 없는 연말 쇼핑을 위한 심리적 밑밥을 미리 뿌려두자는 심산에서였다. 가격표의 금액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비용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흥정하지도 사치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바야흐로 돈 쓸 일 많은 연말이다. 모두들 약간의 호사를 누리시길.

WRITE박정하

PHOTO구찌

2017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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