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INTERVIEW
Nov 14, 2017

친구는 없구나

지난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그룹전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는 김윤경 큐레이터의 세 번째 책과 연관되어 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원형 계단에 선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김윤경 디렉터.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원형 계단에 선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김윤경 디렉터.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재단이 운영하는 아홉 개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픈한 메종 에르메스 지하 공간에 위치해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운영을 시작한 것은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오픈한 2006년의 일로 대중적으로는 에르메스 미술상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인지되어왔다. 1997년 한국 지사를 설립한 에르메스는 2000년 한국 미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국내 미술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미술상을 제정한다. 정식 명칭은 ‘에르메스재단 미술상(구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으로 보통 ‘에르메스상’으로 불린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크게 에르메스상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상이 제정된 초기, 에르메스상은 수상자 1인을 발표하고 이듬해 수상자의 개인전을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002년에 이르면 에르메스상은 수상자 발표와 전시를 같은 해 진행하는 것으로 소폭 변화한다. 에르메스상은 2003년 대대적인 변화를 꾀한다. 먼저 미술 관계자의 추천에 따라 일정 수의 작가를 심의에 올리고 1차 심사를 통해 3인을 추려내면 이 3인의 작가가 작품을 제작해 전시한다. 영국의 터너 상이나 미국의 휴고 보스 상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과정으로 작가가 아닌 작품에 대한 시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데, 심사는 3인 작가의 신작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최종 수상자 1인을 발표하게 된다. 수상 작가의 개인전은 별도로 지원하지 않았으며, 전시 장소도 갤러리 현대에서 아트선재센터로 바뀌었다.
2006년 에르메스상은 2007년 초로 미뤄져 진행되었는데, 이때부터 전시는 도산 공원에 신사옥을 마련한 에르메스 코리아의 3층 전시장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게 된다. 전시 공간이 생기자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디렉터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시작한다. 1대 디렉터는 김성원 큐레이터로 2006년 10월부터 2010년까지 재직한다. 백지숙 디렉터가 부임한 2011년 5월과 김성원 디렉터가 퇴직한 2006년 10월 사이 백남준 아트센터의 관장을 역임한 박만우 큐레이터가 잠시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디렉터직을 맡는다. 백지숙 디렉터가 재직하던 당시 에르메스상은 다시 한번 변화를 꾀한다. 기존 3인의 경쟁 체제가 아닌 수상 작가를 발표하고 이듬해 수상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하는 초기 형태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공간도 변화를 맞이했다. 3층에 설치되어 있던 전시장은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대대적인 레노베이션과 함께 지하층으로 내려오게 된다. 에르메스상이 변화하고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이전을 계획한 2014년 말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새로운 디렉터로 김윤경 큐레이터가 지명된다.
에르메스상의 위상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그 자체로 중요한 미술 기관 중 하나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를 운영하는 에르메스 재단은 에르메스사의 지원으로 운영되지만 그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프랑스 정부 소속의 예술 재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크게는 두 가지 목적하에 운영된다. 첫 번째는 한국-프랑스 간의 문화 교류 측면이다. 에르메스상이 다시 초기 형태로 회귀하면서 작가 지원 사항에는 하나의 항목이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수상 작가의 파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다.
수상 작가는 이듬해 자신이 원하는 4개월의 시간 동안 파리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는 큰 틀에서 보면 작가의 작업 지원을 통한 문화교류로 이해할 수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두 번째 역할은 국내 작가들의 전시 기획을 통해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디렉터의 역할에 있어 이러한 전시 기획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선보이는 전시는 그 자체로 한국 미술계의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자 참여 작가와 디렉터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로서 관찰되기 때문이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디렉터 김윤경 큐레이터는 모든 것이 우연이었다고 회상한다. “원래는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육학을 전공했어요 그 과정이 만약 순탄하고 성공적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큐레이터로서 두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술회하는 김윤경 큐레이터에게 출판은 주요한 큐러토리얼 프랙티스 Curatorial Practice로 보인다.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독립 출판사 마르스프레스 Mars Press에서 출판한 <합의, 일시적인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2012) 은 김윤경 큐레이터가 일곱 명의 작가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각기 9개의 질문과 9개의 답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단순히 작가와의 대화가 아닌 시련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기능과 역할을 환기시킨다.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김윤경 큐레이터는 1997년 아트선재미술관에 취직한다. “당시 아트선재센터의 서울관이 개관하기 전이어서 경주와 서울을 오가며 근무했어요. 그러다 아트선재센터 서울관이 개관하자 반응이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해요. 마치 모두가 기다려온 장소가 드디어 생긴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죠.” 순항 중이던 그녀의 경력은 그녀의 능력과는 무관한 힘에 의해 좌절된다. 1990년대 말 한국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모기업을 둔 미술관들은 축소 내지는 폐관이 불가피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어요. 큰 기대 없이 지원한 학교에 합격한 이유도 있었고요.”

큐레이터로서 두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술회하는 김윤경 큐레이터에게 출판은 주요한 큐러토리얼 프랙티스 Curatorial Practice로 보인다.
큐레이터로서 두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고 술회하는 김윤경 큐레이터에게 출판은 주요한 큐러토리얼 프랙티스 Curatorial Practice로 보인다.

"예술이 행복을 전제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이 행복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진실을 말하되 상처를 주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 그게 예술이 성찰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큐레이터로서 첫 번째 좌절을 경험한 김윤경 큐레이터는 뉴욕 시립 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해 공공 미술을 연구하다 지금은 폐관한 몽인아트센터의 디렉터로 부임하게 된다. 몽인아트센터가 문을 연 2007년의 국내 미술계는 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의 출현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출현과 더불어 <페스티벌 봄>의 등장, 문예진흥기금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은 특히 젊은 작가들이 활약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항간에는 아트 딜러들이 대학교 스튜디오를 돌며 물감이 마르지도 않은 학생 작가들의 작품을 매입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장소 특정적 미술’, ‘다장르 다원예술’ 등의 개념이 대대적으로 출현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학계에선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통섭>이 유행하며 학제 간 융합이 예측 가능한 새로운 예술을 위한 시발점처럼 간주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윤경 디렉터를 필두로 한 몽인아트센터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인 60~70년대생 작가들의 전시를 개인전 규모로 기획하며 이목을 끌었다.
몽인아트센터에서의 경험은 김윤경의 큐레이터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로 이는 그녀가 출판한 책이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부임한 이후 선보인 일련의 전시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김윤경 큐레이터의 1인 출판 프로젝트 마르스프레스에서 발간한 <합의, 일시적인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은 몽인아트센터가 폐관한 이후 시점에 등장하는데, 이는 전시 기획과 더불어 글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큐레이터라는 역할의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시련을 겪은 자가 그것을 이겨내는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윤경 디렉터는 몽인아트센터의 폐관을 큐레이터로서 겪은 두 번째 좌절로 기억하고 있다.
마르스프레스에서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두 번째 책은 김윤경 큐레이터가 전시를 통해 만난 작가들과의 대화를 기본으로 한다. “첫 번째 책이 제 동년배들과의 교류를 다뤘다면 두 번째 책은 좀 더 나이 든 연배의 작가들과의 대화를 기본으로 해요. ‘이런 내 생각을 굳건히 실천해나갈 수 있을까?’,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저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거죠.” 김윤경 큐레이터가 기획하는 일련의 책들은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들의 연배와 세대 그리고 책이 출판된 시점에 따라 명시적으로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나와 그 주변’에서 출발해 선배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다음 등장한 새로운 세대 작가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순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 책은 좌절된 미래에 대한 이야기예요. 오늘의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해보면, 어렴풋이 더 나아질 것 없는 암울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상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패가 예정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미래 시점에 도달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망해가는 사회를 관찰하면서 동시에 나아가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 국면을 돌파해가고 있을까? 그런 지점에 흥미를 느껴요.”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그룹전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는 그녀의 세 번째 책과 연관되어 있다. “예술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기는 끝난 것 같아요. 모더니즘에선 형식 자체가 곧 내용이었고,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고 본다면 이러한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한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오늘날 예술의 지향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예술이 행복을 전제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이 행복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8과 1/2>에 보면 귀도가 이런 말을 해요. ‘행복이란 상처를 주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상처를 주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쉬운 건 없겠죠. 진실을 말하되 상처를 주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 그게 예술이 성찰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페데리코 펠리니의 1963년작 <8과 1/2>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복잡한 미로와 같은 영화다. <8과 1/2>에서 펠리니의 분신으로 보이는 주인공 귀도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엄격한 가톨릭 교육의 영향 아래 성장한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감독인 그에게 영화란 자신의 억눌린 욕망을 표출하고 그로 인해 구원받거나 파멸하게 되는 일종의 해결의 장소, 최후의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도와 관습에 지배받는 주인공 귀도에 큐레이터를 대입해본다면 김윤경 디렉터의 미적 지향과 취향을 어느 정도는 그려볼 수 있을 듯하다.
한편 김윤경 디렉터가 인용한 영화 <8과 1/2>의 주인공 귀도의 대사는 이렇게 연결된다. “정말 웃기리라고 생각했어. 내 이야기의 가장 웃기는 대목이 되리라고 말이야. 여기 이 테이블에서 발표할 짧은 연설까지 준비했었지.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지. ‘나의 연인들이여, 행복은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항상 진실을 말할 수 있음에 있습니다. 카를라는 매일 밤처럼 하프를 연주했을 거고 우리는 세상에 멀리 떨어진 이곳에 숨어 있음을 행복하게 여겼을 거야. 그런데 뭐가 문제지? 왜 이렇게 슬픈 거지?’” 자조 섞인 기도의 독백처럼 영화는 그가 말하는 행복을 좌절의 연속으로 보여준다. 암울한 미래 앞에서 말하는 행복은 역설인가? 반성인가? 마르스프레스의 새로운 책이 곧 출판될 예정이다.

EDITOR유병서

PHOTO이재안

201711월호

본 기사를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등에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기사를 재편집하여 올릴경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