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MEMO
Dec 04, 2017

넷플릭스는 서두르지 않는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넷플릭스의 한국 정착기를 진단해봤다.

넷플릭스의 시청자는 올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섰다.

넷플릭스의 시청자는 올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조용했지만, 세계는 시끄러웠다. 지난 10월 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2가 풀리자마자 전 세계의 ‘빈지 레이서 Binge Racer’들은 소파에 앉아 정주행을 시작했다. 빈지 레이싱은 넷플릭스라는 특이한 플랫폼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청 형태다. 아직 대부분의 콘텐츠 제공자들은 한 시즌의 에피소드를 시간 간격을 두고 공개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적인 유선방송 HBO의 <왕좌의 게임>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넷플릭스는 시리즈 전체를 한 번에 푼다. 온종일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것을 ‘빈지 와칭 Binge Watching’이라고 한다. 한국어로 옮기면 ‘폭풍 시청’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이러한 빈지 와처 중에서 한꺼번에 풀린 에피소드 10편짜리 시리즈물을 단 24시간 안에 시청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빈지 레이서’라 부르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840만 명의 빈지 레이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미국과 덴마크의 시청자들이 가장 빨리 주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빈지 레이서들을 위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공개하는 정확한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을 홈페이지에 걸어두어 관심과 흥미를 제대로 돋운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 2가 지난 10월 27일 오후 4시에 공개된다는 소식에 한국의 비공식 빈지 레이서인 에디터 역시 회사에 월차를 내고 시즌 1을 정주행한 뒤, 겸허한 자세로 시즌 2를 기다렸다. <복스>나 <매셔블 허프포스트> 등의 뉴미디어는 물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까지 앞다투어 <기묘한 이야기> 시즌 2 오픈을 다룬 기사를 쏟아냈다. 할리우드에서 장르물을 가장 잘 다루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더퍼 형제 Duffer Brothers의 심층 기사부터 이 형제들이 10대 여자 배우에게 대본에 없는 키스 장면을 강요했다는 논란의 가십성 기사까지 다양한 소식이 쏟아졌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기묘한 이야기>는 전 세계 1억 명의 유료 시청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리즈 중 하나다. 극 중에 한 아역 배우가 입고 나온 미네소타 과학박물관의 브론토사우르스가 그려진 후드 티셔츠가 1만8000장, 60만 달러어치나 팔렸을 정도니 어느 정도 인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조용했다. tvN이나 SBS의 드라마는 조금만 인기가 있어도 본 방송을 녹취하듯 받아 적어 기사로 내보내는 한국의 미디어들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내 미디어 관계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실패로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슈엔 흥미가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말 넷플릭스는 한국 정착에 실패한 것일까? 사실 보도와 다르게 국내 언론들의 냉대 속에서도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그림을 착실히 완성해나가고 있다. 다만, 넷플릭스는 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료 구독자가 웹에서 로그인을 한 후 넷플릭스를 시청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매우 정확한 시청자 데이터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때문에 시청자 개개인이 좋아하는 장르가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의 시리즈를 좋아하는지 전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넷플릭스는 모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극비에 부치고 있으며, 그나마 있던 사용자의 별점 서비스까지 폐지해버렸다. 그러니 <기묘한 이야기>나 <나르코스>를 한국에서 몇 사람이나 봤는지 외부인들은 도통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디어는 ‘넷플릭스는 실패했다’고 진단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성공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6월 29일에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옥자>가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안드로이드 앱 기준으로 직전 주에 9만7922명에 불과했던 넷플릭스 앱 접속자 수가 7월 3~9일 사이에만 20만2587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넷플릭스의 시청자는 올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최근 발표에 따르면 그중 3000만 명 이상이 미국이 아닌 나라의 유료 구독자이며, 2017년 3분기에만 530만 명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포브스>는 넷플릭스의 주가가 최근 200달러를 넘어선 동시에 작년 대비 60%가량 뛰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콘텐츠 제작사인 디즈니의 주가는 7%, 방송사 CBS의 주가는 11% 떨어졌으며 미국 500개 기업의 주가를 묶은 ‘S&P500’은 14% 성장에 그쳤으니 어쩌면 언론이 전하는 넷플릭스의 한국 실패는 섣부른 진단일지 모른다. 그들은 단지 조금 느리게 로딩 중인 것뿐인데 말이다.

WRITER박세회

2017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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