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HOTEL
Jun 12, 2018

예술적인 휴식 공간

이제 막 문을 연 라이즈 오토그래퍼 컬렉션.

예술적인 휴식 공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객실.

물음표는 다시 이쪽을 향해 돌아왔다. “도대체 왜 여행을 싫어해요?” 황금연휴가 더는 귀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달력 위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어느 온천 마을, 지구 반대편 이국의 도시 등 모두가 각자의 계획을 밝히며 설렘을 과시하던 중, 홀로 고백하듯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멀리 떠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낯선 장소는 조금 불편해서요.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의 좋은 호텔에서 놀고 먹고 쉬는 게 훨씬 더 낫더라고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올라올 즈음 누군가 한 줄기 빛처럼 꺼낸 ‘호캉스’란 단어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되살렸다.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뜻하는 이 신조어는 작년 이맘때쯤부터 등장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하나의 방식이 되어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고도 충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실용적 형태의 여행으로 자리 잡았다. 며칠 후, 막상 기나긴 연휴를 맞닥뜨리고 나니 어디라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이때다 싶었다. 고작 30분 거리의 홍대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RYSE Autograph Collection’ 호텔을 목적지 삼아 첫 호캉스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예술적인 휴식 공간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타르틴 베이커리의 토스트바.

런던의 건축 사무소 미켈리스 보이드 Michaelis Boyd가 설계한 곳이라는 소식 역시 호기심을 자극했다. 본래 서교호텔이 자리했던 터에 자리를 잡고 지난 4월 24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 호텔이다. 네모난 창문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듯한 높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다. 국내에는 한남동에만 존재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한다는 유명 베이커리 카페 ‘타르틴’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소로 이름을 떨친 타르틴의 빵과 커피를 여기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니. 벌써 달콤한 휴가가 시작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체크인을 위해 3층 로비로 올라갔다. 거대한 그림을 품은 하얀 벽면 옆, 마찬가지로 커다란 크기의 액자들을 뒤로한 프런트 데스크가 눈에 띄었다. 최근 베를린 내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호텔 겸 문화 공간 소호 하우스 베를린 Soho House Berlin을 설계한 미켈리스 보이드 특유의 예술적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객실 타입은 총 6가지. 기본적인 구조를 갖춘 ‘크리에이터 룸’과 비즈니스 투숙객을 고려한 ‘에디터 룸’, 아늑한 분위기를 살린 ‘디렉터 룸’을 비롯해 방 전체를 개방형으로 디자인한 ‘프로듀서 스위트’와 건물 최상층의 널찍한 파티 및 이벤트 룸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스위트’까지 무려 272개 객실을 다양한 스타일로 마련해두었다. 그중 단연 흥미를 불러일으킨 객실은 공간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삼은 ‘아티스트 스위트’였다.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으로 불리는 글로벌 커뮤니티 매칸 Maekan, 설치미술가 박여주, 사진작가 로랑 세그리셔 Laurent Segretier와 조각, 페인팅 등 복합적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작가 찰스 문카 Charles Munka, 네 아티스트의 관점을 바탕으로 해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은 호텔이 아닌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협업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사진으로 확인한 박여주 작가의 객실을 골라 예쁜 색깔이 입혀진 룸에 도착했다. 내부 곳곳에는 알록달록한 유리벽이 배치돼 들어온 빛을 프리즘처럼 온통 반사하며 눈부시게 반짝였다. 이 환한 빛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라 미켈리스 보이드가 만든 디자인 가구가 섬세한 구도로 자리해 있었다. 한편 테이블 위에는 소리를 증폭해 생생한 사운드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붐박스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었는데, 오롯이 내 취향에 꼭 맞는 곡을 틀고 욕실 안에 비치된 패션 브랜드 이세 Iise의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바깥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멀찌감치 희미하게 보이던 건물과 사람들이 마치 어느 영화 속 도입부 장면처럼 다음으로 이어질 새 장을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방 안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있다 보니 슬슬 허기가 졌다. 간단히 요기할 음식을 찾아 밖으로 나가려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제안으로 호텔 안 바를 들러보기로 했다. 15층 꼭대기에 오픈한 루프톱 바 겸 라운지 ‘사이드 노트 클럽 Side Note Club’은 청담동 ‘르 챔버’와 컬래버레이션한 특별한 공간이다.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1000여 개 바이닐 컬렉션이 이곳 한쪽 벽면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며 바텐더가 건네주는 근사한 칵테일로 목을 축였고, 취기가 올라올 즈음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방 안을 고요히 감싸는 은은한 달빛을 바라보는데, 더없이 편안하고 안온한 기분이 들어 곧바로 누워 잠에 들었다.

예술적인 휴식 공간
부드러운 촉감의 목욕 가운이 비치된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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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구운 빵과 함께 향기로운 커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의 커피숍.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앞두고 다소 편안한 차림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4층 식당을 찾았다. 브런치 혹은 양식 메뉴를 조식으로 제공하는 기존 호텔들과 달리, 레스토랑 ‘롱침 Long Chim’은 태국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다. 방콕 길거리와 시장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미슐랭 1 스타 셰프 데이비드 톰슨 David Thompson의 음식은 독특하면서도 이색적인 식자재를 사용하되 향신료 고유의 지나치게 알싸한 맛을 덜어 담백하고 조화로운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지하 아라리오 갤러리 4호점 ‘아라리오 서울 라이즈호텔’을 찾아 개관 기념 전시 <기억하거나, 망각하는 Remembering, or Forgetting>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실험적 작품 세계가 돋보이는 중국 아티스트 쉬바청 Xu Bacheng, 자수와 바느질 작업물을 내놓은 일본 아티스트 기요카와 아사미 Kiyokawa Asami 등 아시아 4개국에서 온 일곱 명 작가들은 홍대 지역이 가진 젊음과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여기에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예술적 정신이 더해져 투숙객의 발걸음을 꽤 오랜 시간 머물게 만들었다. 잠깐의 여유를 만끽한 다음, 단 이틀 동안의 짧은 휴가를 곱씹으며 객실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마쳤다. 떠밀리듯 호텔을 나서자마자 바로 앞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가득했고, 눈앞으로는 익숙한 일상이 펼쳐졌다. ‘호사가 뭐 별건가.’ 하룻밤 꿈처럼 지나가버린 찰나의 휴식이었음에도 충만한 자유를 실감한 이번 호캉스는 틀림없이 성공적이었다. 다름 아닌 스스로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좋은 여행의 방법을 찾아냈으니 말이다.

EDITOR박소현

2018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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