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INTERVIEW
Jan 09, 2018

특정한 관계의 미러

송동의 설치 작품 ‘낭비하지 말라’(2005)는 낭비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낭비해왔는지를 일일이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쓰레기와 작품 사이의 이 물증은 이미 비가역적이 되어버린 지나간 날들의 이미지를 비추고 낭비하며 살아온 자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정한 관계의 미러

송동의 작품에는 완숙한 한 인간이 그의 주변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존재한다. 페이스 서울 Pace Seoul에서 진행되고 있는 송동의 개인전 <무용지용 ⽆⽤之⽤>은 그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젊은 날의 기록 중 하나인 ‘炒水(초수: 물을 볶다, Frying Water)’(1992)로부터 시작된다. 작은 브라운관 TV엔 화로 위에서 한껏 달궈진 웍이 등장한다. 화면 속의 작가는 여기에 물을 튀겨 볶는데 물은 삽시간에 증기가 되어 날아가 없어진다.
이 작품은 송동이 자신의 결혼식 날에 직접 촬영한 것으로 여기엔 숨겨진 일화가 있다. 송동은 동료 작가였던 인시우전과 결혼을 앞두고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식장으로 이동하며 사람들을 환대하는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완의 기획으로 남게 된다. 귀하게 키운 딸을 자전거에 태워 보내기를 꺼리던 처가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던 순간 송동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결혼식을 촬영하던 카메라 장비였다. 작가는 그 카메라를 빌려 식장의 주방에 들어가서 물을 튀기는 장면을 녹화했다.
“개인적인 차원의 기록이에요. 결혼은 저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고 이날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먹을 것을 태워 연기로 날려 보내는 것은 대지의 신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먼저 제물로 바치는 일종의 종교적 의례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송동은 이러한 견해를 긍정하면서도 자신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종교적인 의미로 접근한 것은 전혀 아니에요. 보통 물이라는 대상은 온도에 따라 형태를 달리합니다. 그 가변적인 물성의 전환에 관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만약, 우리를 둘러싼 비가시적이며 절대적이고 종교적 차원의 존재들에 관한 존중의 표현이 아니라면 그것은 환상적인 사건에 도취된, 작가 개인의 격앙된 기분과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 날아갈 듯한 기쁨. 그 마음은 여기서 공기로 퍼져 나가는 수증기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예복을 입은 채 벅찬 감동을 수증기로 날려 보내고 있던 송동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힐난이었다.

‘吃盆景(흘분경: 먹을 수 있는 분재)’, 수제 액자 86×60cm 사진 240×79.5×8cm, 액자와 사진, 2000.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吃盆景(흘분경: 먹을 수 있는 분재)’, 수제 액자 86×60cm 사진 240×79.5×8cm, 액자와 사진, 2000.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꾸중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작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죠.” 베이징 서우두사범대학교 Capital Normal University in Beijing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던 송동은 대학을 졸업한 후 붓을 꺾는다. 그는 정확히 대학에서 배운 것의 반대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예술은 저에게 있어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림을 넘어서 더 큰 차원의 자유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송동에게는 필연적 결정이었지만 작가의 아버지에게는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그림이 저를 가난에서 구제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림 그리기를 중단한 것이 불만이었던 거죠.” 가난한 아들에 관한 걱정과 송동의 무용지용한 결혼식 비디오는 작가와 아버지를 잇는 새로운 작품의 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는 문화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본가로 낙인이 찍혀 베이징에서 추방되어 강제징용되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두 분은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저에게 최선을 다했고 그런 측면에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느낍니다.” 화목한 가족이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점차 서먹해졌다. 아버지의 기대와 송동의 의지는 충돌했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송동은 아버지에게 다가가려 했다. 다가서려는 의지는 신체적인 행동으로 발전했다. 아버지의 몸을 만지는 행위에 관한 기록으로 말이다.
“아버지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아연질색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어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많이 달랐던 거죠.” 송동은 작품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새로운 카드를 준비한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 작품에 참여해주셔야 제가 성공을 합니다. 이 작품은 저를 유명하게 만들 거예요’.”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아버지는 이내 아들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촬영은 아버지의 방에서 진행되었다. 오직 부자만이 들어선 방 안에서 아버지는 옷을 벗는다. 아버지의 벗은 몸 위로 작가가 촬영한 영상이 프로젝션된다. 이 장면은 마치 송동의 손이 아버지의 몸을 만지는 듯이 보인다. 아버지의 몸 앞에 놓인 카메라가 이 장면을 촬영한다. 송동은 이 순간을 매우 각별한 기억으로 회상하고 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아버지와 저는 서로를,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때부터 저를 한 사람의 미술가로 인정해주신 것 같아요. 아버지와 저의 관계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송동의 손이 아버지의 벗은 몸을 어루만지는 영상 작품 ‘나의 아버지를 만지다 Touching My Father’(1998)는 관계미학의 개념이 자리 잡기 이전에 등장한 관계적 미학을 다루는 영상 작품이다. 여기서의 관계는 ‘관객’이나 ‘대중’ 혹은 ‘관람자’ 같은 피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성장한 아들과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첨예한 긴장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특정한 관계를 작품의 주제로 취하는 것은 송동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为之为 碎⽚(무위지위 쇄편) 010’, 오래된 창문, 100×140×70cm, 2014.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为之为 碎⽚(무위지위 쇄편) 010’, 오래된 창문, 100×140×70cm, 2014.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冷开⽔(냉개수: 차가운 끓는 물)’, 주전자, 티비 세트, 난로, 디비디 플레이어, 굴뚝, 154.3×36.8×64.8cm, 1997.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冷开⽔(냉개수: 차가운 끓는 물)’, 주전자, 티비 세트, 난로, 디비디 플레이어, 굴뚝, 154.3×36.8×64.8cm, 1997.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冷开⽔(냉개수: 차가운 끓는 물)’, 작품의 세부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冷开⽔(냉개수: 차가운 끓는 물)’, 작품의 세부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之⽤(무용지용)#5’, 오래된 가구, 나무, 타일, 수도꼭지, 54×72×66cm, 2013-201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之⽤(무용지용)#5’, 오래된 가구, 나무, 타일, 수도꼭지, 54×72×66cm, 2013-201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壶开⽔ (일호개수: 끓는 물 주전자)’, 12개의 연속 흑백사진, 472.1×52.7×4.1cm (TOTAL) 33.3×50cm (EA), 199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壶开⽔ (일호개수: 끓는 물 주전자)’, 12개의 연속 흑백사진, 472.1×52.7×4.1cm (TOTAL) 33.3×50cm (EA), 199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炒⽔(초수: 물을 볶다)’, 영상 1분 4초, 1992.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炒⽔(초수: 물을 볶다)’, 영상 1분 4초, 1992.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壶开⽔(일호개수: 끓는 물 주전자)’, 12개의 연속 흑백사진 472.1×52.7×4.1cm (TOTAL) 33.3×50cm (EA), 199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壶开⽔(일호개수: 끓는 물 주전자)’, 12개의 연속 흑백사진 472.1×52.7×4.1cm (TOTAL) 33.3×50cm (EA), 1995. © SONG DONG, COURTESY PACE GALLERY.

그러나 송동의 작품은 관계적 미학의 전형성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먼저 관계미학의 전형들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미학적 성취의 도구로서 취하는 경향이 있다면, 송동 작품에서의 관계는 그것이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으로 등장하며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관찰된다. 그러니까 송동의 작품은 관계를 매개나 질료로 취해 새로운 차원의 미학적 성취를 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계를 개선하거나 그것을 확장시키기 위해 미술을 매개와 도구로 취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관계미학적 작품들과 구별된다.
“작가로서 제 인생에는 중요한 작업이 세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를 만지다’이고 다른 하나는 ‘물로 일기를 쓰다 Writing Diary with Water’(1996)이며 마지막 하나는 ‘낭비하지 말라 Waste Not’(2005)입니다.” <물로 일기를 쓰다>는 작가가 매일매일 진행하고 있는 수행적 퍼포먼스다. 물로 일기를 쓰면 글자는 잠깐 눈에 보이다 곧 사라진다. 송동은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송동의 작품 중에서 가장 강렬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것은 ‘낭비하지 말라’이다. 이 작품을 작업한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의 집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에 빼곡히 물건이 들어차고 마침내는 집 밖으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송동은 어머니의 저장강박이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출발한 집착이라는 점은 이해했지만 지저분한 광경에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욕한다고 제발 좀 치우라고 간청했죠. 그러자 어머니가 ‘낭비하면 안 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문장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송동은 아버지의 몸을 만질 때와 같은 기분으로 어머니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제 제안을 거절하셨어요. 물건을 저장하는 걸 남 앞에 보이는 게 두려우셨던 거죠.” 하지만 송동은 자신의 출세를 미끼로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 작품으로 제 명성이 더 높아질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사실 진짜 목적은 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어요.”
결과적으로 ‘낭비하지 말라’는 송동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는 동시에 중국의 드라마틱한 전환과 연관된 강렬한 시각적 선언문으로 기억되게 된다. 꼬깃꼬깃 접어놓은 비닐 봉투부터 그릇, 자전거, 각종 식기와 신문 등 온갖 것을 포괄하는 이 거대한 인스톨레이션은 송동의 어머니가 모아놓은 저장물들을 전시관으로 옮겨놓는 간략한 플롯을 취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매우 강렬한 조형미를 선사하는데 쉬이 버려지는 무용한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만다라는 그 앞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낭비하지 말라’는 낭비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낭비해왔는지를 일일이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쓰레기와 작품 사이의 이 물증은 이미 비가역적이 되어버린 지나간 날들의 이미지를 비추고 낭비하며 살아온 자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의 변화 속도는 경이롭습니다만 이 과정은 엄청난 낭비를 동반합니다. 제 작품은 모두 버려지는 물건들, 그러니까 쓰레기를 재가공한 것입니다.” 송동의 작품은 급격한 중국의 변화에 반응하고 이를 기록하는 동시에 여기에 새로운 차원의 시공간을 불어넣는다. 여기서 송동은 재료를 취합해 재가공한 다음 이를 독특한 조각 작품으로 변화시키는데 이렇게 탄생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반사나 투과 등 시각적 왜곡 효과를 차용하고 있다. “제 작품은 거울입니다. 있는 것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이죠.” 송동이 구축한 거대한 거울 속에서 버려진 무용한 것들은 증기가 되어 사라지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완숙한 한 인간의 온정 어린 손길로서 채워지게 된다. 이 장면은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촉각적이며 여기서의 경험은 시각적 만족이라기보다 정서적 차원의 치유로 다가오고 있다.

WRITER유병서

PHOTO이재안

EDITOR정세영

2018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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