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RAVEL / INTERVIEW
Jul 17, 2017

쿠바, 그 삶의 방식

쿠바의 시인이자 음악가, 선 禪 사상가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를 만났다.
쿠바 문화의 핵심을 ‘즉흥’ 개념이라 말하는 그의 생각은 새처럼 자유롭지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삶을 이루는 말의 무게를 인지하며 서울과 쿠바를 걸었다.

쿠바 아바나에서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가 태어나 53년간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창 너머 말레콘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쿠바 아바나에서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가 태어나 53년간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창 너머 말레콘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현재 쿠바 사람들의 문화는
매일 직면하는 문제를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일 그 자체예요.


쿠바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어요. 한국에서 발표할 에세이의 주제 ‘우리와 타자’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에세이 도입부에 가사 일부를 인용했죠. “우리/ 그리고 그들/ 그리고 결국엔/ 우린 평범한 사람들일 뿐.” 그리고 그 밑에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프린스턴 대학의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남긴 아주 짧은 일종의 시를 인용했죠. ‘나 우리’. 이 사이에 쉼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벽이 쳐진 느낌이겠지요. 에세이에서도 ‘우리’나 ‘타자’에 대해서 특정 짓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할 때 언제나 ‘나’를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내가 없으면 우리도, 타자도 없어요. 마치 당신이 ‘나’라는 언어를 처음 배울 때처럼 말입니다.

어젯밤엔 ‘나’에 관해서 얘기하셨다고요.
‘나’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내가 있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인간의 삶에서 어느 날 당신은 하루에도 여러 번 다른 자아를 발견한다는 얘기지요. 내가 어떤 주장을 하는데 그것이 모두 같은 사람이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에서 일반적인 용도로 나를 주민등록증처럼 명확히 정의하길 바라죠. “이게 나예요, 이게 내 번호입니다” 하고 내밀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적 분야에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로 규정되거나 집단 속에 속하는 존재로 남고 싶어 해요. 단순하고 안정적이니까요.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요. 
한 과학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인간은 살면서 50명 이상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의 사회적인 정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국가, 같은 문화전에서 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교감을 잘 한다기보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의 의미이죠. 난 아웃사이더예요. 시인은 대개 아웃사이더죠. 아웃사이더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내부자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듯 말이죠. ‘피곤해’, ‘행복해’라는 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긍정과 부정과 함께 중립도 필요 하니까요. 그곳에 정말 아무 뜻이 없을 때도 있고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의식처럼 하는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선 사상을 공부하면서 명상과 요가를 21년 정도 했습니다. 별건 아니죠. 도겐 道元이라는 일본 승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지만 이런 것은 금세 시든다. 그러나 우리가 싫어하는 잡초는 계속해서 자라난다.” 명상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에요. 명상을 하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얻는데 이것은 금세 사라집니다. 대신 욕망, 질투, 부정적인 생각들은 매 순간 계속 생겨나거든요. 잘라내면 또 자라고, 잘라내면 또 자라죠. 명상은 잘라내는 과정이에요.

쿠바의 집은 어디에 있나요? 
창문을 열면 말레콘 너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어요. 53년째 이곳에 살고 있죠. 스튜디오 형태의 1층을 내가 쓰고 2층엔 어머니가 살고 있어요. 나와 내 아들이 태어나고 자란 아주 오래된 집이라 모든 공간이 영감을 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 번 절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매일같이 반복하는 습관이죠. 그 후엔 바닥을 쓸고 앉아 명상을 합니다. 그러곤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무엇이든 하죠. 번역하거나 무언가를 완성하거나, 집 앞 계단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요.

선 사상을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쿠바에서 선은 흔하지 않아요. 일본에서 스승이 수련 차 쿠바를 방문했을 때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배우게 되었죠. 선과 노자의 도교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 정수는 같은데 구조가 다를 뿐이죠.

당신의 카혼 연주, 낭독과 낭송을 듣거나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주변의 자연 요소들과 다루는 도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요.
카혼은 내 친구지요. 직접 나무를 고르고 깎아 만듭니다. 카혼 집은 어머니가 제 이름을 새겨 만들어준 것이고요. 곡을 쓸 때는 악기와 목소리가 서로 동일한 위치에 있도록 노력합니다. 누가 더 앞서 나가지 않아야 해요. 공연에서는 리듬이 중요하죠. 리듬은 사람들을 유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청자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를 주는 겁니다. 그러면 진심이 공유될 수 있어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죠. 의식적으로 실수할 공간을 만들어둬야 합니다. 완벽하려고 하다 보면 점점 더 먼 존재가 되기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아방가르드 음악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런 빈 공간이 전복을 꾀하는 원동력 같아요.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셀로니어스 몽크 Thelonious Monk 같은 이들이 1960~70년대 모더니즘 열풍 앞에서 실수를 즐긴 대표적인 음악가죠. 실수, 그 빈 공간은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아방가르드 음악을 한 뮤지션들이 그래서 의미 있는 거고요. 난센스, 횡설수설, 날것의 요소들이 생동감 있고 산뜻하게 표현되는 겁니다. 

쿠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다른 문화와 공존하는 힘이 있어 보여요. 그게 쿠바인들의 행복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 문화라는 건 예술적인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자신의 일상에서 닥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간과 반복을 필요로 하는 일이죠. 현재 쿠바 사람들의 문화는 지난 20~30년 동안 지속되어온 결핍과 궁핍에서 비롯한 매일같이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어요. 매일 마주하는 문제에 즉흥적으로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었던 거죠. 이 즉흥적 결론을 쿠바 사람들은 발명이라 말해요. 그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대처하는 것,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죠.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느긋한 것 같아요.
문제는 어떤 환경이 변화하거나 발전하면 사람들은 문제를 잊어버리고 그 상황에 안주한다는 거죠. 더 이상 즉흥적인 결정을 하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진짜 문화가 형성될 수 없어요. 상황에 끌려가니까요.

쿠바에 진짜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최근 몇 십 년간 쿠바 문화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없이 문화적 빈곤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한 세대 이상, 100년 200년 지속되는 진정한 문화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지요. 지금 쿠바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현재 진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의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이죠. 몇 년, 몇 십 년째 이것을 재생산하는 일에 그치고 있어요.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페르난도 페레즈 감독의 영화 <하바나에서 마지막 나날들>은 쿠바를 떠나려는 사람들과 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그건 배드 무비예요.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좋지 않은 거죠.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쿠바에서 촬영하지 않았을뿐더러 의미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한국 영화 중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좋아합니다. 아트나 영화의 핵심은 재료예요. 재료가 풍부하고 특별하면 그것에 대해 논할 게 많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영화들은 단순히 좋은 영화라고 쉽게 인식되죠.
진짜 쿠바 영화 한 편을 알려드릴게요. 1968년 만들어진 토마스 쿠티에레즈 알레아 Tomás GuTiérrez Alea 감독의 <저개발의 기억 Memories of underdevelopment>. 50년 전 영화지만 여전히 쿠바 혁명이나 그로 인해 빚어진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하는 영화예요.

다큐멘터리인가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류의 영화예요. 음, 19세기 쿠바의 중요한 인물 중 펠릭스 발레라 Félix Varela가 있어요. 그는 쿠바인들이 과학 연구 분야에서 서구 유럽의 사고를 소화하는 데 공을 세웠지만 정치 분야에선 실패했어요. ‘그것은 그들이거나 아니면 우리이거나’라는 그의 말이 얼마나 급진적으로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는지, 또 몇 백 년이 지나 얼마나 많은 쿠바인들이 유전적 연관성을 제시하면서 스페인 시민권을 얻으려 하는지 생각해보면 실로 놀라워요.

한국에서는 최근 ‘혁명’이란 단어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미국과 부분 수교를 맺은 지금 쿠바도 또 다른 의미의 혁명을 맞이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느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쿠바는 혁명에서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지요. 물질적인 이익,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차치하고 얘기할게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족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듯이 민중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개개인의 평화를 위한 아주 중요한 행동이죠. 그러나 이 행동만으론 부족합니다. 아까 말했듯 여기에 아이디어와 시간이 더해져 새로운 문화, 생활 방식을 형성해야 합니다. 쿠바도 마찬가지고요. 몇 세대에 걸쳐 이어져야 하는 긴 여정이죠.

자연과 인간, 존재의 인지는 오마르의 자유로운 예술 세계의 축을 이룬다.
자연과 인간, 존재의 인지는 오마르의 자유로운 예술 세계의 축을 이룬다.

볼리비아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고등학생 아들이 방학에 와서 묵고 있는 침실.
볼리비아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고등학생 아들이 방학에 와서 묵고 있는 침실.

작가는 그와 그의 아들이 태어나고 자란 오래된 이 집의 모든 흔적이 곧 자신의 삶이라 말한다.
작가는 그와 그의 아들이 태어나고 자란 오래된 이 집의 모든 흔적이 곧 자신의 삶이라 말한다.

유년 시절 창문 너머 별을 바라보며 별이 곧 자신이고,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 믿었다는 오마르.
유년 시절 창문 너머 별을 바라보며 별이 곧 자신이고,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 믿었다는 오마르.

매일 아침 세 번 절을 하고 비질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오마르.
매일 아침 세 번 절을 하고 비질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오마르.

바다가 보이는 서재의 책상 위에 놓인 그림. 꼴라주 작업을 좋아해 여인의 누드화 위에 다른 얼굴을 오려 붙였다.
바다가 보이는 서재의 책상 위에 놓인 그림. 꼴라주 작업을 좋아해 여인의 누드화 위에 다른 얼굴을 오려 붙였다.

EDITORLEE DA YOUNG

PHOTOGRAPHYPARK JONG HA

DESIGN김민정

2017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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